임오교변으로 체포된 대종교인 25명, 그중 안희제와 나철의 두 아들인 나정련(羅正練), 나정문(羅正紋), 권상익(權相益), 이정(李楨) 등 10명이 잔인하고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사했다.
독립운동가 서일 총재의 장남 서윤제 선생 사위 최관 선생도 투옥되었다. 독립운동가 안희제와 발해농장 등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다 피체되었다.
일제 치하 종교탄압사건 중 가장 규모가 큰 사건이었지만 그들은 역사 속으로 잊어져 갔다. 이러한 일제의 탄압사건을 임오교변(壬午敎變)이라 부른다.
작년 8월에 액하감옥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적 있다. 현재 액하감옥은 목단강시 철령하진에 위치해 있는데 주변이 급속도로 변화되면서 주변건물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어 액하감옥의 원 상태를 보존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목단강시정부 외사처의 허가를 받고 한국인 최초로 액하감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안에는 사형장터 옥사 고문실 등이 있었고 감옥이 5동으로 되어 있었다는 것도 현지 노인들의 증언도 들었다.
액하감옥 안에는 독립투사들을 사형 후 시체를 들어 내가던 통로도 발견 되었다. 다행인 것은 2015년 목단강시정부가 철령하감옥으로 명칭을 변경, 역사문물로 지정한 것이다.
액하감옥은 철도길 넘어 현지 죄수들이 수형되어 있는 감옥이 있었다. 보존회에서는 흑룡강성 정부 외사처에 복원요청을 추진하고 있다. 액하감옥도 여순감옥처럼 복원하여 한국인들이 찾을 수 있는 답사코스가 되길 기원해본다.
/노경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