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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단강 조선족사범학교 제2기 졸업생 서안 여행기

작성일 : 21.06.26 22:32 | 조회 : 1,393
  1. 글쓴이 : 중국관광신…
  2. 중국공산당 탄생 100주년을 맞아 목단강조선족사범학교 제2기 졸업생 14명은 70세의 고령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지인 서안, 연안을 찾아 뜻 깊은 추억을 남겼다.
     
    5월 25일, 중국 각 지방에 흩어져있는 14명의 동창들은(한국에 있는 10여명은 코로나19로 인해 참석하지 못함) 모두 할빈공항을 출발하여 6시간이나 되는 장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무사히 서안에 도착한 후 현지에 거주하던 송문희와 그의 남동생부부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이튿날, 일행은 차를 타고 오매불망 그리던 혁명의 성지 연안을 향해 출발하였다. 차안에서도 들뜬 마음에 노래를 부르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연안의 상징인 "보탑산"에 도착하였다.
     
    아!~ 보탑산!
    얼마나 찾아보고 싶고 그리웠던 보탑산이였던가?
     
    모택동과 주덕, 주은래 등 중앙간부들의 넋이 어려 있으며 항일전쟁 때 총사령부의 위대한 형상으로 우뚝 세워진 보탑산이 바로 앞에 있었다.
     
    일행들은 모두 서서 숙연히 머리숙였다. 다시 보탑을 우러러 보고 또 가까이 가서 만져도 보았다. 한참 둘러본 이들은 그 거대한 탑 아래서 기념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댔다.
     
    잇따라 양가평을 지나 양가령으로 이동하였다. 항일전쟁 때 총사령부였던 움막집을 들여다보니 소박한 사무용책상, 침대, 다 낡아서 퇴색한 이불이 보였으며 언덕아래는 당년에 손수 물마시던 우물이 보였다. 이런 실물들을 볼 때마다 일행들은 모두 코마루가 찡해나며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이후 발길을 돌려 다른 곳들을 둘러보고는 다시 차를 타고 또 홍군이 장정시기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황무지를 개간하여 대풍작을 거두었던 "남니만"으로 떠났다.
     
    눈앞에 안겨온 "남니만"은 옛날의 “남니만”이 아니였고 노래와 같이 기름진 옥토로 살기 좋은 고장으로 변하여 "근본을 잊지 말고 사명을 완수하자"는 구호와 같이 충천하는 혁명열의속에서 방방곡곡의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옛날의 “남니만”을 그려보노라니 "자력갱생하여 자기의 의식주를 해결하자!"는 위대한 호소와 "지도전", "지뢰전" 같은 영화가 연상되면서 8년 항전, 3년 해방전쟁에서 대승리를 얻은 지난날의 일들이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
     
    마침 “남니만”에 커다란 당기조각상이 있기에 일행들은 발 빠르게 움직여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선서하듯 엄숙한 표정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동창들은 마치 그날 모택동 주석과 중앙간부들을 직접 만나고 오는 것 같은 기분으로 "남니만"의 노래를 열창하였다.
     
    이번 관광에서 동창들은 식사 때마다 저마다 성의껏 자기가 대접한다고 서로 앞을 다투어 가면서 계산한다고 법석대는 것을 보니 그래도 세월이 흘렀어도 그제 날의 그 정은 그대로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또 식사 전에는 꼭 서로 관광길에 다친 데는 없었는지 건강상태는 어떠한지도 점검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이 이처럼 놀랍게 발전하고 생활도 날로 부유해지고 있는 것은 선열들의 희생과 나라를 위해 피 흘려 싸워온 덕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관광을 떠난 셋째 날은 "병마용"과 "화청궁"을 관람하였다. 중국을 통일시킨 최초의 황제 진시황 릉묘를 지키기 위해 흙으로 빚어 만들어진 6,000명의 "병마용"과 중국 역사에 력력히 기재되여 있는 "만리장성"으로 남겨져 있는 이 고대유물들을 바라보는 이들은 연이어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후 "화청궁"으로 이동하였다. 궁 안에 들어서니 양귀비의 고운 몸매를 드러내는 조각상인 청동상이 보였다. "화청궁"은 천하일색 양귀비의 생전의 행궁으로서 그 규모가 대단하였다.
     
    주나라 때부터 황실의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당나라 제6대 황제인 현종이가 양귀비를 자주 찾아와 대규모로 전각을 짓고 전원을 만들면서 유명해진 곳으로서 현종이와 양귀비의 로멘스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그 궁 안에 바로 "화천지"가 있는데 원래는 양귀비가 놀던 온천탕이었는데 저녁이면 화천산에 환한 불을 켜놓고 연극을 구경했다는 것이다.
     
    넷째 날은 "황하" 관람이었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강인 "화하"의 물은 흙탕물이었지만 세차게 흘러내리는 그 장엄한 기세는 14억 중국인민들의 위대한 역량을 과시하는 듯 실로 대 장관이였다.
     
    그 옆에 쏟아져 내리는 맑은 "일구폭포"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흰 비단결같이 더없이 깨끗하고 맑았다. 경탄이 쏟아져 나오는 그 멋진 배경 앞에서 마음껏 감상하고 마음껏 감정을 토로하면서 마음껏 사진을 찍어댔다.
     
    기세높이 전진하고 있는 중국을 상징하는 황하여, 세계로 도약하는 중국과 함께 영원히, 영원히 더 세게 흘러 흘러가거라!
     
    닷새째 되던 날은 중국의 5대 명산인 "화산"의 남봉으로 갔다. 남봉은 해발 2,050미터가 된다.
    "화산"은 5개 봉우리가 다 꽃처럼 피어 있다고 해서 옛날부터 "화산"(华山)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화산"은 산세가 험준하고 모습이 웅장하여 그야말로 대 장관이었다. 일행들은 "와~ !" 하고 소리 지르며 한 사람 한 사람 뒤에 뒤를 이어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산으로 오르는지 구름을 헤치며 하늘로 오르는지 난생 처음 이렇게 높은 산을 오르고 있는 이들은 마냥 신기하고 꿈같이 행복하기만 하였다. 이윽고 정상에 올랐다. 산 아래를 굽어보니 너무 높은 곳으로 올라와 있어서인지 사면을 둘러보니 산세가 너무나도 기묘하고 웅장하게 보였다. 경탄을 금치 못하는 일행들은 "와~ 너무 멋지다.", "우리의 소원을 풀었다!"고 외쳐댔는데 그 소리가 메아리쳐 더 신나게 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70세가 넘는 동창들이 화산의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온 기적적인 현실에 행복감이 들었다. 이들은 오래 동안 명산의 절승경개를 만끽하면서 이 험준하고 웅위로운 산을 둘러보고 또 보았다. "화산"을 정복했다는 쾌감으로 산 아래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자 가이드의 재촉 소리에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저녁마다 한상에 모여앉아 먹고 마시는 일도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였다. 식후마다 이뤄지는 덕담에 모두들 얼굴엔 웃음꽃 피어났으며 특히 홍석호 선생의 유모에는 모두들 눈물을 흘려가면서 신나게 웃어댔다.
     
    이날 저녁엔 또 다른 눈부신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고 하기에 식사시간을 오래 끌지 않고 모두 자리를 차고 나왔는데 아시아에서 제일 큰 황홀한 분수대가 있는 "대연탑 북광장"으로 간다는 것이였다. 그곳에 가보니 관람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오색찬란한 분수는 하늘높이 치솟아 오르고 규모도 얼마나 큰지 량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분수의 색갈도 얼마나 다채롭고 황홀한지 그 아름답고 찬란한 표현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분수가 한 번씩 공중으로 치솟아 오를 때면 하늘의 별무리들도 다 쏟아져 내리는 듯 너무나도 황홀하게 느껴졌다. 모두들 감탄의 함성을 질러댔다. "야 ~ !", "와 ~ ! " 하는 관객들의 함성은 밤하늘을 진동시켰다. 정말 눈부신 멋진 밤이였다.
     
    여섯째 되는 날은 서안 "역사박물관", "종루"(钟楼), "고루"(鼓楼), 성벽(城墙) 등을 구경하러 나왔는데 그날따라 여성친구들은 모두 아름다운 한복을 차려입고 나섰다. 5천년 역사를 갖고 있는 서안의 고대 문물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여겨보는 일행들은 이곳에 와서 "서안사변"도 똑똑히 알게 되었는데 1936년 중국 서부지방 서안의 동북군(만주군) 지휘관이였던 장학량이 바로 장개석이 중국북부를 침략한 일본군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반공내전을 지속할 방침을 세우자 즉시 장개석을 감금하였는데 이 사건이 바로 서안사변이었던 것이다.
     
    관람을 끝낸 일행은 또 다시 사진 찍기에 바빴다. 사진을 다 찍짜 여성친구들은 성벽 옆 광장에서 단체 춤을 추기 시작하였는데 70세 고령 친구들의 춤은 얼마나 황홀했는지 함께 구경 나왔던 관광객들이 환호하기 시작했고 오가는 길손들은 삽시에 모여들어 "어디서 온 예술단인가?" 물으면서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 주기도 했다. 이에 더욱 신난 친구들은 아름다운 꽃물결을 이루면서 더욱 열심히 춤을 추자 연신 "쎄쎄! 쎄쎄!"로 답례하였다.
     
    이날저녁은 서안 관광에서의 마지막 만찬이였다. 맛 나는 음식들이 육속 회전상에 올라오자 김정호 회장이 "건배!" 제의를 하자 모두들 다시한번 우렁찬 목소리로 “건배”를 외치면서 즐거운 기분을 이어갔다.
     
    오래동안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그리운 모습을 보고 싶었던 동창들은 서로서로 그리운 정을 나누기 시작했고 보고 싶었던 얼굴들을 문화도시인 서안에서 보게 되어 더없이 가쁘다고 했다. 1,200만 인구에 5,000년 역사를 가진 서안에서 그것도 "화산", "황하" 그리고 "명분 샘"까지, 진시황 때의 고대 유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여 있는 조국의 "문화보물고"에서의 만남이 얼마나 뜻 깊고 즐거웠던지 모두들 맘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 하였다. 동시에 우리 동창들의 우정도 더욱 깊어간다고 하면서 모두 건강하게 100세까지 이어가자고 하였다.
     
    그날 저녁의 술잔을 부딪치는 땡그랑 소리, 선율에 맞춰 춤추는 모습, 열창하는 모습은 정말 학창시절의 그 우정이 넘치는 감격과 행복의 순간이 되였다.
     
    이렇게 동창들은 6박 7일간의 견학과 관광을 마치고 아무 탈 없이 모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때의 그 장면들은 눈앞에 얼른 거리고 있다. 참으로 날씨까지 축복해준 우리들의 여행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란 이 역사적인 기념일과 함께 영원히 우리의 우정을 빛내줄 것으로 기억하게 된다.
    /박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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