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의 한 지인이 “인정” 이라는 글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글의 내용을 간략하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필퍽이라는 여사가 한국 방문시 목격하였던 세 가지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 우리 선조들이 기르는 소를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 감이나 대추를 따면서 까치밥을 남겨두는 사랑, 사람과 자연은 한 뿌리라고 천지에 베푸는 아량을 읽었다.
소가 힘 들까 짐을 덜어주려는 농부의 배려는 옛날 우리 선조들에게 흔히 있었던 일이였다고 한다. 겨울에 새에게 남겨주는 “까치 밥”은 지금도 풍속처럼 이어오고 있다. 선조들의 깊고 넓은 배려는 짜릿한 감동을 준다. 우리 선조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과 그 시대의 아름다운 미덕, 그때의 그 민심이 그리워지는 요즘 세월이다.
현대인들은 그 뿌리도 잊고 정치적 의념의 차이로 형제간, 사촌간에도 총부리를 맞대고 으르렁대는 세월이 수십년이 됐는가 하면 뿌리를 찾아 고국에 온 한겨레를 이방인 취급을 하고 혐오까지 하고 있으니 참 으로 가슴 시리고 한 맺힐 일이다.
며칠 전에도 조선족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동영상을 보고 많이 흥분하고 분노한 적이 있다. 몰상식한 인간들이 길거리에서 조선족에게 폭언하고 무시하는 추악한 행태를 벌인다. 우리 선조들의 소박한 민심이 처참 하게 짓밟힌 현장이였다. 이 나라에 찾아온 한겨레를 이방인이라고 혐오한다. 그러는 당신들은 뭐가 그리 잘나서 서슴없이 사람을 무시하는가? 제도적으로나 도의적으로 인종차별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절대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물며 동족혐오가 웬 말인가! 마땅히 질타를 받아야 한다.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 동족을 혐오하고 홀대하는 사람들은 영혼이 있는지 묻고 싶다. 병적인 정신 상태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선족의 역사도 가르쳐줘야 할 것 같다. 조선족의 역사를 안다면 이런 상식 밖의 짓거리들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가끔은 부정적인 생각 을 하게 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고국이 아니라 외국 땅이구나 하고 말이다.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현실, 우리가 어쩌다가 뿌리를 찾아 이 땅에 왔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 조선족은 세세대대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셈이다. 할아버지 세대가 만주 땅으로 건너가 중국의 이방인으로, 3세대인 우리가 할아버지가 살던 고국에 와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이방인 생활에 지칠 때도 많지만 친절한 한국인 동료들과 어울리며 한국생활에 재미를 느낀다. 우리 고향보다 춥지도 않고 하여 이곳에 마음을 붙이고 정착할 생각까지 하다가도 우리를 이방인 취급하는 병적인 사람들로 인해 고향에 돌아갈 결심을 굳히게 되고 이방인 생활에 권태를 느끼기도 한다. 친절한 한국인 열사람 보다 혐오증을 가진 한국 인 한사람이 이 나라 이미지를 추락시킨다.
일본에 잠깐 머물었을때 알바하던 공장에서 한국인 아주머니를 만났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절대 한국인이라 하지 말라고 꼭 중국인이라 말하라고 당부를 해주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에 대한 혐오가 심하다고 하시면서 자기는 일본인 남편의 성씨를 따라서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였다. 얼마나 이방인의 혐오에 시달렸으면 생면부지 나를 동족이라고 심히 걱정해 주실까?! 마음이 괴롭고 슬펐다.
소도 아끼고 사랑하던 우리선조들의 아름다운 미덕, 까치밥을 남겨주는 깊은 배려가 아직 이 땅에 아직 남아 있기나 하는지 심히 우려가 된다. 언제? 왜 살아 졌는지 알 수 없는 슬픈 일이다. 소와 짐을 나누어지는 농부, 씨앗 세 개씩 뿌려주어 천지와 하나가 되여가는 농부들, 우리 선조들의 소박한 그 민심이 이 땅에서 부활하여 영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부터 그런 농부의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이 되여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김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