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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른다, 제비 뽑기하던 그날

작성일 : 21.05.16 11:22 | 조회 : 1,163
  1. 글쓴이 : 중국관광신…
  2. 1980년 10월 말의 어느날 저녁에 문식은 침실 동창들한테 물었다.


    "누구한테 먹을게 없나?"
    다들 없다고 하자 문식이는 조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야, 제비뽑기를 하자.  돈 두장, 술 두장, 안주 두장이다. 돈 쥔 사람은 돈 1원 내고 술 쥔 사람은 그 돈을 갖고 가 술을 사오고 안주 쥔 사람은 해룡선생님네 김치를 훔쳐 온다. 어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종렬이가 반대했다.
    " 난 반대다."


    종렬은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날 오후에 엄마가 돼지사료인 벼 겨를 팔아 모은 돈 2원짜리 한장을 인편에 보내왔는데 그 돈은 한달 용돈이었다. 그러니 동의할리 만무하다.


    그가 반대하자 문식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당장 이 침실에서 나가라."
    문식의 위풍에 종렬은 더 반대하지 못했다.


    제비 뽑기가 시작됐다. 내가 1호로 뽑았다. 술이다. 2호는 종렬이다. 내가 술을 뽑자 그는 다소 긴장해 났다. 제비를 쥘 그의 손은 눈뛰게 떨렸다. 제비를 펼쳐본 그의 얼굴은 대뜸 변했다. 돈이다. 3호는 림금산이다. 그도 돈이다. 금산이도 돈이 떨어져 집에서 부쳐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종렬아 네가 먼저 선대해라."


    4호는 문식이다. 술을 쥐었다. 칠산이와 장혁이에게는 안주가 차려졌다. 나와 문식은 노루잡은 포수군 처럼 그 돈을 받아쥐고 우쭐거리며 침실을 나섰다. 그런데 그 우쭐거림은 얼마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학교 근처의 상점문은 꽁꽁 닫겨있었다. 부득불 시내로 나가야 했다. 한시간가량 돌았으나 문을 연 상점은 커녕 구멍가게마저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한담?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나는 할수 없이 얼마전에 정훈의 아버지께 고향술 두병 드린 것을 문식한테 말했다. 문식은 무릎을 탁 치며 흥분했다.


    "됐어. 정훈네 집으로 가기오."


    우리가 정훈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불이 꺼져있었다. 문식은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불이 켜졌다. 좀 지나 정훈의 어머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 거 누구요?"


    정훈이 어머니는 깡패들이 정훈이를 찾아온 줄로 여기고 부들부들 떨었다고 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잠옷바람으로 나온 정훈이가 찾아온 사연을 듣자 어이없어 입을 쩍 벌렸다. 그의 손에서 술 두병을 받아쥔 우리는 힘차고 기세높이 개선가를 부르며 침실에 들어섰다.

     

    시쿰한 김치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칠산이와 장혁이가 김치를 훔친 일도 재미있었다. 담임선생님 댁의 김치움에 도착하니 자물통이 움을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한담?
    한참 서성거리던 중 장혁이가 뭘 걷어차는 바람에 덜커덩 소리가 났다. 그때까지 주무시지 않으셨던 선생님께서 소리를 들으시고 창문을 여셨다. 달밤이어서 둘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고 물으시자 칠산이 기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열쇠와 비닐 주머니를 갖고 나오셨다. 그리고 손수 움에 들어가셔서 김치 두 포기를 비닐주머니에 담아 칠산이한테 주셨다.


    "열쇠를 창문옆 벽돌밑에 놓겠으니 생각나면 훔쳐먹어라."


    그날 밤에 김치안주에 술 두병 굽냈다. 이튿날 아침에 돈 2원을 종렬이한테 돌려주었다. 그는 의아한 눈길로 나와 문식을 번갈아 보았다. 우리가 술 이야기를 들려주자 모두 혀를 끌끌 찼다. 그때 돈을 돌려받은 종렬은 얼마나 좋아하던지?

     

    1985년 여름 종렬의 집을 방문한 나는 종렬이와 그의 아내의 "보복"에 술 마시던 자리에서 꼬꾸라져 잤다. 같이 간 장혁이도 종렬이와 그의 아내도 내 꼴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종렬이와의 마지막 자리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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